[SS인터뷰] ‘상의원’ 고수 “감정 많이 싣지 않아도 마음 전할 수 있더라”
[SS인터뷰] ‘상의원’ 고수 “감정 많이 싣지 않아도 마음 전할 수 있더라”
  • 승인 2014.12.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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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V 이아라 기자] 배우 고수(36)가 옷의 고수를 뛰어넘어 천재 한복 디자이너로 돌아왔다. 

천재도,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고수가 배역을 맡은 영화 ‘상의원’(감독 이원석) 속 이공진은 천재가 노력하는데 즐기기까지 한다. 비록 공진의 신분은 미천할지라도 옷에 대한 능력치 하나만큼은 으뜸이다.

열등감을 가진 왕(유연석 분)과 사랑을 갈구하는 왕비(박신혜 분)는 공진의 능력을 신임하고, 왕실 의복 장인으로 30년을 지낸 어침장 조돌석(한석규 분)은 그의 눈부신 재능을 시기한다. 모두 나름의 불편한 감정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을 때, 이공진은 달랐다. 조돌석에게 견제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되려 순수한 존경심을 표하는가 하면, 당시의 의상 기준을 뒤집는 파격적인 옷을 제작하거나, 왕비를 빛내주기 위한 옷 만들기에 골몰한다.

“예전에 했던 캐릭터들은 누군가가 화를 내면 ‘왜 화를 내느냐’라며 물어볼 수 있고,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고, 같이 성을 낼 수도 있었어요. 근데 공진은 그런 리액션이 달랐어요. 그럴 수도 없었고, 억울한 상황에 처하면서도 끝까지 그걸 안고 갔어요. 그런 면에서 ‘공진이 이렇게까지 참고 가는 게 맞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 대신 다른 쪽으로 공진의 다른 내면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수위 조절 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만큼 상대적으로 공진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자신을 가둘 수 있는 다양한 감정에서 자유롭다. 옷과 관련된 게 아니라면, 공진의 자유분방한 예술가 기질과 작업에 대한 몰입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았다. 분명 억울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도 말이다. 이 같은 공진의 모습은 극에서 유일한 이상적 인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저도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꾸 표현하려 하니까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이런 공진은 좀 아닌 거 같다’라고 하셨어요. 배우가 공진을 (온전히)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감독님이 기다려주셨죠. 완성된 걸 보니 ‘이게 맞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인물들은 여러 것에 집착하지만 공진은 돈과 명예 등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니까요. 다른 인물들의 분노에 똑같이 반응하지 않았어도 마지막에는 공진의 감정이 많이 느껴졌어요. 감정을 많이 싣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고, 제 소리를 낼 수 있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걸 알게 됐어요.”

고수는 감정의 조절을 이원석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이뤄나갔다. 공진이 완벽한 인물로 거듭날 수 있던 비결에는 이원석 감독을 향한 고수의 믿음이 짙게 깔렸던 것. 그는 “신뢰와 같은 부분에서 감독님과 코드가 맞아 억울함을 표현하지 않아도 연기할 수 있었어요”라고 덧붙였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어려웠는데, 그 이후에 ‘남자사용설명서’를 봤어요. 보고 나서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새로움과 독특함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시더라고요. 나중에 감독님과 다시 만나 ‘상의원’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으신지 물었어요. 감독님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마냥 유쾌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진중한 면이 있으셨고 저는 거기서 진심을 느낀 거죠.”

고수의 말처럼 이원석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는 재기발랄한 연출과 남다른 코미디 감각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상의원’ 역시 이원석 감독의 개성이 돋보이는 장치를 이곳저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전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이색적인 CG로 표현, 사극이라는 장르에 접목했다. 분명 참신한 시도였다. 이원석 감독을 향한 고수의 호기심과 신뢰는 완성된 작품으로 확인받았다.

“한복과 상의원을 소재로 한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유쾌한 판타지를 쓰는 건 용기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현대물도 아닌 사극에서 누가 그런 판타지를 쓸 수 있을까요. 끝까지 본인의 색깔을 담아내셨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이원석)감독님 밖에 없을 거예요. 이런 작품이 또 있을까 싶어요.”

   
 

◆ 이공진에 완벽 빙의한 고수… “손바느질이 더 살아있는 느낌”

고수가 분한 공진의 바늘 끝에서 나온 옷들은 조선의 패션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파격적이었고, 모두가 그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옷을 필요로 했다. 공진은 왕비를 보자마자 마음에 품지만 자신의 신분에 박탈감을 느끼며 고뇌하기보다, 자신만의 재능으로 왕비가 왕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다. 애틋한 마음은 공진의 숱한 고민이 거듭된 진연복으로 빛을 발한다. 그의 마음이 올인 된 옷은 그 어떤 옷보다 빛났고 왕비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왕비는 사랑까지 아니었겠지만, 공진은 왕비를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이뤄지면 안 되는 사이예요. (웃음) 왕비를 보는 순간 사랑하고 행복해했지만 이내 안타까워하잖아요. 공진은 왕비를 웃게 하겠다는 하나의 꿈이 생겼고, 혼자 그 꿈을 향해 나아간 거예요. 결국 (옷의 아름다움으로)모든 사람이 왕비에게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죠.”

고수는 ‘상의원’에서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호연을 펼쳤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귀공자풍 외모와 반듯하고 단정한 이미지는 완벽히 떨쳐냈다.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치거나 수염을 기른 이공진은 능청맞고 까불까불 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늘을 들었을 때만큼은 또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그간 보여준 고수의 캐릭터들과 분명 다르다.

이런 고수의 이공진은 잠시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 그는 스크린을 마음껏 수놓고 다니는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 그 자체였다. 고수와의 인터뷰 내내 여러 번 공진의 흔적을 느낀 것은 물론이다. 그가 공진에 푹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낀 게 맞을 거다.

“영감을 떠올리는 부분 등 공진이 풍부하게 보였으면 했는데 나오지 않는 부분이니까 그림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사실 공진이 돌석보다 바느질하는 장면이 더 많아요. 하하. 어머니들과 아낙네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바느질을 했을까’ 생각했어요. 저도 바느질 한 두어 달 해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했죠. ‘옷을 입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도 떠올렸고요. 손바느질과 미싱은 확실히 달라요. 손바느질이 더 살아있는 느낌이에요. (웃음)”

   
 

◆ “외모로만 부각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감사해”

어느덧 데뷔 15년 차인 고수. 드라마 ‘광끼’(1999)로 데뷔해 ‘피아노’(2001)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는 ‘순수의 시대’(2002) ‘그린로즈’(2005) ‘황금의 제국’(2013) 등과 영화 ‘백야행’(2009) ‘고지전’(2011) ‘집으로 가는 길’(2013) 등을 통해 차곡차곡 변신을 꾀해 왔다. 고수는 한결 같이 잘생긴 외모로 ‘고비드’(고수와 다비드 상을 합친 말)라는 수식어로 불렸고, 작품보다 외모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에 고수는 “배우로서 외모로만 부각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감사하다”고 웃어 보였다.

‘상의원’은 고수가 사극을 좋아함에도 데뷔 이래 처음으로 도전한 사극이다. 고수는 “과거에도 사람이 살고, 현재에도 사람이 살지만, 생활양식은 조금씩 다르잖아요. 공간은 그대로 있고 사람만 바뀌는 게 신기해요”라는 이유로 아날로그와 사극이 좋단다. 배우로서의 고수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고수가 있어 지금의 고수가 있듯이, 앞으로 다채롭게 채워질 그의 공간이 오래오래 사랑받는 아날로그가 되길 기대한다.

사진 = 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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