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정유미, 오빠바보에서 악플달리는 홍세나 되다
[SS인터뷰] 정유미, 오빠바보에서 악플달리는 홍세나 되다
  • 승인 2012.06.1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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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이현지 기자] “엄마가 짜증이 많이 늘었대요.”

지난 3월 SBS ‘옥탑방 왕세자’(연출 신윤섭 안길호 l 극본 이희명) 제작발표회에서 악역에 도전하게 된 소감을 전하며 정유미는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 시간이 흘러 만난 정유미는 “짜증이 많이 줄었느냐”는 질문에 “이제 핑계도 없고, 큰일났어요”라며 웃었다.

정유미는 이번 ‘옥탑방 왕세자’로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전작인 ‘천일의 약속’에서는 모자라리만치 착해빠진 향기를 연기했다. ‘오빠바보’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옥탑방 왕세자’로 ‘향기’ 이미지를 벗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악역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덕인지 “홍세나 ‘옥탑방 왕세자’에 안나왔으면 좋겠다”란 댓글이 달렸으니까.

“드라마 중반 이후부터는 세나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저도 이해가 안 갔어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세나에게 애정이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종영이 얼마 남지 않으니까 세나랑 헤어지기 싫더라고요. 미운정이 들었나 봐요. 안쓰럽기도 하고. 용태무에게 사랑을 받지만 외로운 사람인 것 같아요. 왜 이렇게까지밖에 결말이 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만큼 헤어지기 아쉬워요. 다른 캐릭터를 고민하면서 이별해야죠.”

   
정유미 ⓒ SSTV 고대현 기자

◆ 교도소에서 ‘너는 내운명’ 찍었는데….

극중 정유미와 악행을 이룬 용태무(이태성 분)는 사건에 휘말리며 악역으로 변했다. 하지만 홍세나는 '모태악녀'였다. 초등학생 세나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동생이 생기자마자 동생 박하를 버렸다. 세나의 악행이 거듭될수록 정유미 역시 초초해졌다. 연기하는 정유미도 세나의 앞날을 알 수 없었다. 개과천선을 할지 마지막까지 교도소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지.

“홍세나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어요. 제작진에서는 극이 흐르다 보면 세나가 악녀로 살아가는 이유가 나올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해도해도 끝이 안 나더라고요. 세나의 악행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생각을 했는데 극 말미에 여회장을 죽이고, 더 일을 꾸밀 것 같았어요. 아직 드라마는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결국 세나에 대한 확실한 묘사가 안됐어요. 세나가 애정 결핍된 과거를 갖고 있고 박하에 대한 열등감이 좀 더 표현됐더라면 좋았을 텐데…. 개과천선을 하기는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모태악녀' 정유미는 자수를 하고 박하에게 간이식수술을 해 주는 결말을 맞았다. 하지만 악행파트너이자 연인 용태무는 경찰에 체포되면서 마무리됐다. 사실 이태성이 교도소에 수감된 뒤 죄를 뉘우치는 장면이 있었지만 편집됐다.

“교도소 장면 촬영할 때 이태성 씨랑 ‘너는 내 운명’ 찍었죠. 정말 절절했어요. 용태용이 깨어났다는 걸 제가 말해주면 용태무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거든요. 세나와 태무의 관계가 정리되고 매듭을 짓는 장면일 수 있는데 편집이 됐어요. 20회에 풀어나가야 할 게 많았던 만큼 그 장면을 넣기에는 극 전체의 감정이 깨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제 개인적인 욕심을 생각하면 많이 아쉽지만 20회가 워낙 잘 나와서 좋아요.”

   
정유미 ⓒ SSTV 고대현 기자

◆ 박유천,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옥탑방 왕세자’ 배우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심복 3인방과 이각, 그리고 박하는 드라마만 보더라도 즐거워 보인다. 연애하느라 달달하고 사랑스럽고, 게다가 언제나 저하 곁을 지키는 심복 3인방까지. 안 좋을 리가 있나 싶다. 그렇다면 언제나 머리 맞대고 악행을 꾸미는 이태성과 정유미는 어땠을까?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랑 태무는 언제나 음모를 꾸미고 분에 못 이기잖아요. 웃을 만한 장면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민 언니가 저희 부럽다고 했어요. ‘이태성 씨랑 촬영하면 재미있겠다’고요. ‘컷’ 소리만 나면 태성이가 정말 웃겨요. 저보다 한 살 어린데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갔어요. 세나에 대해 고민을 하면 ‘잘 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주고 대화도 많이 나눴어요. 동료애라는 게 뭔지 느꼈어요. ‘이런 사람들과 헤어지기 싫다’란 느낌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정유미는 박유천에 대한 칭찬 또한 아끼지 않았다. ‘아이돌’ 박유천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박유천 씨는 자신의 인기와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일 친해지기 어려울 줄 알았거든요. 가수 출신이라는 거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고요. 그런데 첫 촬영에서부터 폭풍 친화력을 보여줬어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 연기자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가졌던 생각이 잘못된 거구나 싶었죠. 연기자의 느낌이 강해서 가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정유미 ⓒ SSTV 고대현 기자

◆ 20대의 마지막,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옥탑방 왕세자’에 출연하며 정유미는 “홍세나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악플만 얻은 게 아니다. 배우들과의 끈끈함이 있는 영화 현장을 그리워 한 정유미에게 소중한 동료애를 알게 해줬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더 이상 ‘향기’가 아닌 정유미로 다가갈 수 있게 했다.

“‘천일의 약속’을 마치고 나서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알아주셨어요. 제 이름보다는 향기로요. ‘우리 아들 만나볼 생각 없나?’라고 묻는 분들도 계셨어요. 이제는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알아봐요. 왕세자, 박하와 촬영을 하는데 유천 씨 팬들이 많이 왔어요. 저를 보는 눈빛이 무섭더라고요. 지민 언니한테 가서 ‘나 요즘 무서워’ ‘나 길에서 맞을 거 같아’라며 걱정도 많이 했어요.(웃음) 그래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아요.”

‘옥탑방 왕세자’를 보며 시청자들은 ‘정유미가 저런 연기도 해?’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을 거다. 분에 못 이겨 떨다가도 환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말그대로 ‘다중이’였다. 시청자들은 정유미에게서 다양한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묵묵한 배우이고 싶어요. 제가 향기 역할을 했을 때 시청자들은 다들 신인인 줄 알았대요. ‘옥탑방 왕세자’에서는 또 다른 사람인 줄 알았고요. 다음에는 정유미가 어떤 연기를 할까? 어떤 게 진짜 정유미야? 이런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난 해 ‘천일의 약속’으로 얼굴을 알렸지만 사실 정유미는 그렇게 어리지 않다. 서른이 머지않았다. 서른은 여배우가 화면에서 가장 예쁘게 비춰지는 나이라고들 한다. 연기자로 쌓은 내공이 가장 무르익는 시기라고. 서른을 앞둔 올해 정유미는 ‘옥탑방 왕세자’를 만났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서른이 안 왔으면 했었는데…. 20대와는 다른 무언가가 펼쳐질 것 같아요. 30대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구나,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요. ‘천일의 약속’과 ‘옥탑방 왕세자’를 하면서 어느 정도 길이 열린 것 같아요. 이렇게 온 기회를 놓치면 안 되잖아요. 20대의 끝자락에서 주목을 받은 만큼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