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건축학개론’ 엄태웅 “이 영화 때문에 첫사랑에게 미안하다”
[SS인터뷰] ‘건축학개론’ 엄태웅 “이 영화 때문에 첫사랑에게 미안하다”
  • 승인 2012.03.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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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웅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유수경 기자] “누군가 좋아하고 만나다보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그중에 제일 아픈 게 아마 첫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엄태웅은 그렇게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회상했다.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속 승민과 마찬가지로 20대 초반에 가슴 아픈 첫사랑을 경험했다는 그. 영화 속에 주로 등장하는 노래들과 삐삐, 모든 게 그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는 엄태웅은 잠시 기억에 젖은 듯 창밖을 내다봤다. “첫사랑을 아직 가슴에 품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이내 그는 입을 연다.

“저는 첫사랑과 오래 연애를 했어요. 하지만 ‘첫사랑’이라는 게 이뤄지지 않아서 첫사랑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첫사랑의 미니홈피를 찾아서 들어가 보고 그러는 것도 아련함과 궁금한 마음 때문이지 다시 만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영화 속 승민과 서연처럼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서로 간에 생기는 감정이 이성적인 끌림이라기보다는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함과 측은함...그런 것들일 것 같습니다.”

21살 무렵 첫사랑을 만나 꽤 긴 시간동안 연애를 했다고 고백하는 엄태웅은 첫사랑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만큼 영화 ‘건축학개론’의 시나리오가 특히 반가웠다고.

지난 22일 개봉한 ‘건축학개론’은 건축가 승민과 그 앞에 15년 만에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는 서연이 함께 집을 완성해가는 동안 새로운 감정을 쌓아가는 로맨틱 멜로 영화다.

   
엄태웅 ⓒ SSTV 고대현 기자

△ 내 기억 속 ‘나쁜 여자’

‘건축학개론’에서 엄태웅(승민 역)은 자신의 첫사랑 한가인(서연 역)을 ‘쌍X’이라고 회상해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가슴을 아프게 했던 ‘나쁜 여자’였다는 소리다.

한가인은 언론시사회에서 “나도 혹시 첫사랑의 기억 속에 그렇게 남아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낸 바 있다. 또한 각본을 담당한 이용주 감독은 이 단어에 대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더 심한 표현은 혐오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접 연기를 해야 했던 엄태웅은 이 대사가 어땠을까?

“사실 표현을 그리 해서 그렇지 열애를 하다보면 싸우기도 하고 안 좋게 헤어지기도 하고 뭐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 것 같습니다. 승민이도 그렇게 욕을 하지만 그것은 당시의 힘들었던 심경을 대변하는 말인 것 같아요. 왜 여자친구가 ‘첫사랑 어땠어?’ 물어보면 ‘너무 좋았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잖아요.(웃음) 실제로는 좋았을 지라도 그냥 별로였다고 흘려버리는 거죠.”

엄태웅은 영화 속 ‘쌍X’이라는 대사가 표면 그대로의 나쁜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공감 가는 부분들이 있다고.

“제가 만났던 여자 중에서 나쁜 여자를 꼽으라면 아마 첫사랑이 아닐까요? 그건 진짜 ‘나쁜 여자’라는 뜻이 아니라 누구든 첫사랑이 제일 마음이 아프기 마련이고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사랑이 처음이다 보니, 아무런 경험과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하니까 하염없이 힘들게만 느껴졌던 기억이 있어요. ‘처음’이라는 건 그래서 아프고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때문에 자꾸 본의아니게 첫사랑 얘기를 하게 되니까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엄태웅 ⓒ SSTV

△ 내 추억이 담긴 ‘동네’

‘건축학개론’에서는 승민과 서연이 함께 짓게 되는 제주도 집 외에도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많은 장소들이 등장한다. 대학생 승민(이제훈 분)과 서연(수지 분)이 처음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나 같은 동네 정릉에 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영화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정릉의 모습을 속속들이 담기 시작한다.

또한 승민과 서연은 ‘건축학개론’ 수업의 과제를 위해 정릉에서 강남의 개포동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화사한 봄볕이 내리쬐는 ‘버스 신’에서 이제훈은 가슴 벅찬 첫사랑에 대한 설렘을 그대로 드러내며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어릴 적부터 쭉 살았던 집이 개포동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는 기자의 말에 엄태웅은 “나는 강북 면목동에 살았다”며 말문을 연다.

“우리 때는 강북에 사는 애들은 어딘가 놀러간다면 종로나 화양리에 많이 갔었어요. 강남 까지 나올 생각을 못했죠. 정말 몇몇 애들이 압구정에 갔다고 얘기를 하고 그랬는데 저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었어요.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신사동에 처음 갔는데 학원 애들과도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이상하게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당시에는 강북과 강남 사는 친구들끼리 문화적인 차이를 많이 느꼈었던 것 같습니다.”

강북과 강남. 실제로 그 당시에는 강을 사이로 위쪽과 아래쪽 학생들끼리 알 수 없는 경계심을 품은 채 서로 날을 세우기도 했었다. 엄태웅은 그래서 강남 쪽 동네보다는 강북 쪽 동네에 대한 추억이 더 많다.

“인사동이랑 삼청동을 특히 좋아해요. 그냥 재밌어요. 거리를 걸어 다녀도 재밌고 아기자기한 것들도 많이 있고...솔직히 지금은 많이 걸을 기회도 없고 걸어 다녀도 편하지가 않은데 어릴 때는 종로에 있는 경양식집에서 돈까스 먹으면서 뮤직비디오도 보고 그랬었죠. 그때 참 행복했었습니다.”

   
엄태웅 ⓒ SSTV 고대현 기자

회상에 잠긴 엄태웅을 보니 문득 ‘삐삐’를 차고 헤어무스를 머리에 바르며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과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듣던 그 시절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몰래 가슴 속에 묻어뒀던 첫사랑의 기억을 살포시 꺼내,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간 뒤 괜히 책상 서랍 속을 뒤지게 만드는 ‘건축학개론’ 속 승민은 딱 이 남자를 위한 역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엄태웅은 ‘건축학개론’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도 많은 이들이 찾게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고3짜리 조카 녀석이 시사회 때 영화를 봤는데 내용에 공감을 못하고 수지 얘기만 하더라고요.(웃음) 저도 어릴 때 영화 ‘남과 여’를 보고 이해를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 완전히 느낌이 달랐죠. 제 조카 같은 친구들이 나중에 성인이 돼서 이 영화를 봤을 때 ‘내가 왜 이걸 몰랐을까’ 하고 느끼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감정은 누구나 언젠가는 알게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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