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골프존 라운딩→라운드 잘 바꿨다"..골프 잘 못된 표현들
[기고] "골프존 라운딩→라운드 잘 바꿨다"..골프 잘 못된 표현들
  • 승인 2022.12.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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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성호준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국내 골프에서 파 3홀, 파 4홀, 파 5홀이 각각 숏홀, 미들홀, 롱홀로 불리기 때문에 ‘짧은 긴 홀’, ‘긴 짧은 홀’이라는 역설적인(실은 괴상한) 단어들이 나온다.

골프 라운드를 시작한다는 의미의 티오프(tee off)가 티업(tee up)으로 불리기도 한다. 라운드를 시작할 때 볼을 티 위에 올리니 티업이 꼭 틀린 말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할 수도 있지만, 티업은 매 홀 해야 하는 것이라 골프 경기를 시작한다는 티오프와는 다르다.

파 3홀에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뒷 조에 티샷을 하게 허용하는 것을 한국에서 ‘사인을 준다’고 한다. 웨이브(wave)를 보낸다고 해야 옳다.

샷을 실수해서 볼이 사람 쪽으로 날아갈 때 “볼~!!!”이라고 소리지르곤 하는데 “포어(fore)”가 맞는 말이다. Fore는 앞을 조심하라는 look out before의 before에서 be를 뺀 것이라고 한다.

싱글 디지트 핸디캐퍼(single digit handicapper)를 싱글 혹은 싱글 플레이어라고 하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당신 싱글이냐”고 하면 미혼이냐는 뜻이고 싱글 플레이어는 혼자 경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린에서 볼의 위치를 표시하는 동전 등은 볼 마커가 아니라 볼 마크다.

이처럼 국내 골프에는 잘 못된 표현들이 있다. 그러나 언어는 변하고 그 변화에 대해 기숙사 사감처럼 엄격할 필요는 없다. 자장면이 짜장면이 됐고, 강아지는 댕댕이로 변하고 있다.

필요하면 새로운 조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레천 매컬러가 언어 변화에 관해 쓴 책 '인터넷 때문에'에 의하면 ‘헬로(Hello·여보세요)’는 토머스 에디슨이 전화기 보급을 위해 발명한 신조어였다.

그래도 가능하면 바뀌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말은 생각까지 바꾸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티샷을 하는 사람을 오너(owner)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너(honor)가 맞다. 전 홀에서 가장 적은 샷으로 홀아웃한 사람으로 명예를 가진 사람이고 가장 먼저 샷을 한다. 한국에선 돈 내기가 성행해서인지 전 홀에서 가장 잘 친 사람은 돈을 딴 사람이 되고 owner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오너라는 단어 때문에 골프에서 돈이 상당히 중요한 것처럼 인식된다. 골프는 돈이 아니라 명예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경사를 봐 달라는 말을 “라이를 봐 달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lie는 골프에서 매우 중요한 말이다. Play it as it lies(놓인 그대로 친다)는 골프의 헌법 비슷한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라이(lie)는 공이 놓인 상태를 말한다. 러프나 경사지, 디벗 자국, 혹은 물이 고인 곳에 있을 때 “라이가 나쁘다”고 한다.

lie는 한국에서는 경사(brake), 그린에서 볼이 굴러가는 선(line) 등의 뜻으로 통한다. 라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린의 경사가 어떤가” “공이 굴러갈 길이 어디인가”라고 묻는 것이 정확하다.

듣기 거북한 말 중엔 ‘라운딩’도 있다. 골프의 ‘라운드’는 복싱의 1라운드, 2라운드, 월드컵 축구의 8강 라운드, 16강 라운드 비슷한 뜻이다. 라운드는 동사가 아니기 때문에 라운딩으로 할 수 없다. 라운딩은 동그랗게 깎는 것, 수학의 반올림 등을 뜻한다.

라운딩이 싫은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기자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골프 책은 '마지막 라운드'였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골프 여행서는 'around of the world in 80 rounds'였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처럼 80라운드의 골프로 세계를 돈다는 뜻이다. 라운드라는 말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라운드라는 멋진 말이 있는데 골프 예능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라운딩이라는 말을 자막으로 써 놓은 걸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멍멍이를 댕댕이로 쓰는 건 위트라도 있지만 라운드를 라운딩으로 쓰는 건 전혀 재미가 없었다.

골프존이 최근 라운딩이라는 용어를 라운드로 바꿨다. 십여 년간 이용자들에게 익숙해진 말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어려운 결정을 했다. 스크린 골프는 새로운 골퍼들의 요람이다. 아기가 엄마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듯, 새내기 골퍼들은 스크린 골프를 통해 골프를 알게 된다. 가능한 정확한 말을 써주는 것이 맞다. 그리고 죽어가던 라운드를 살려줘서 고맙다.

/글 성호준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