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거미줄 같은 사회적 안전망으로 팬데믹이 남기고 간 마음의 상흔을 보살펴야 할 때
[기고문] 거미줄 같은 사회적 안전망으로 팬데믹이 남기고 간 마음의 상흔을 보살펴야 할 때
  • 승인 2022.11.2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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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경 대한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장(굿네이버스서울동작지부 자문위원)
남희경

 

요즘 청명한 가을하늘과 무르익어가는 단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코로나 팬데믹은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느슨해졌고, 실외 마스크 의무화도 해제되었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위험한 적’으로 여기는 시기는 지나간 듯합니다. 팬데믹 위기의 문턱을 넘어 이제 본격적으로 뉴노멀 시대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과연 괜찮은 걸까요?

전쟁 같은 팬데믹은 지나갔지만, 아이들의 마음에는 아직 위기를 견뎌낸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최근 아이들의 마음을 조사한 통계수치에는 적어도 그렇게 드러납니다.

2022년 유니세프와 갤럽 21개국 조사 결과, 전 세계 아동·청소년 5명 중 1명은 우울을 겪고 있으며, 교육부에서 실시한 학생정신건강 실태조사(2022)에서도 초등학생의 30%는 팬데믹 전보다 불안과 우울이 증가하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자살 위험군이 급증하였습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스트레스 수준과 스마트폰 사용량과 같은 정신건강의 위험요인은 유의하게 상승하였고, 교우관계나 교사 관계와 같은 보호요인은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더 취약합니다. 아동들의 전반적 언어발달과 정서발달은 지연되었고, 취약계층 아동의 사회성 발달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교사들이나 심리전문가들은 요즘 가장 치열한 전쟁 같은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왜 아이들은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정서적인 퇴행을 보이는 걸까요?

팬데믹에 대한 아이들의 경험은 어른들과 분명 다릅니다. 뇌와 신경계가 한창 발달하고 있는 아이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을 견뎌내는 데 필요한 일시적 긴장과 불안반응이 만성적인 특성이 되어버립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접촉의 금기는 몸으로 놀면서 자연스럽게 정서조절감각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사회성 발달의 기회를 빼앗아갔습니다.

안전한 접촉과 놀이를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을 풀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이나 가상현실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됩니다. 몸이 느끼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은 정서를 차단하는 방법이고 일시적으로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각이 깨어있지 않으면 정서를 느끼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과 견디는 힘을 배울 수 없습니다.

안전과 신뢰, 놀이를 책으로 배울 수 있을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해야 놀 수 있습니다. 정신의 건강은 아는 힘이 아니라 노는 힘에서 나옵니다. 옷깃만 스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살갗만 스쳐도 화들짝 놀라는 아이들은 안전하게 놀 수 없습니다.

무감각한 아이들, 예민하게 날이 선 아이들, 무기력한 아이들은 놀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일상적 스트레스 사건에 과민한 반응을 하게 되고, 만성적 긴장이 정서 감각의 차단상태를 야기합니다. 몸이 느끼는 고통을 마비시키는 것은 일상적 쾌감도 마비시키는 일이 되며, 신체적 감각의 감소와 쾌감의 마비는 자해나 자살 생각의 증가에도 기여합니다.

팬데믹 이후 아동·청소년의 자해나 자살 위험군이 급증했다는 결과는 이러한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 팬데믹이 남기고 간 아이들 마음의 상흔을 보살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거미줄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모든 회복과 치유의 선행조건은‘안전감’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놀이가 일어나고,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안전한 공간은 물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안전한 분위기와 환경입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가정이어야 하지만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팬데믹의 상흔은 더욱 혹독했습니다.

가정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심리적 안전망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애초에 팬데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2022년 5월부터 굿네이버스 서울동작지부에서 진행한 '마음토닥 몸도계' 정서조절프로그램은 교육청과 학교, 지역사회로 구성된 사회적 안전망의 통합지원체계 사례로 교실로 찾아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학교에서부터 편안한 교실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학교, 병원, 심리상담기관, 공공기관, NGO복지기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각적이고 협력적인 관계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분야별 협력과 통합적 지원이 이루어질 때, 안전한 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회복되고 무럭무럭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글=남희경 대한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장(굿네이버스서울동작지부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