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상담소' '기생자식' 김형준 "태사자 해체 후 무기력증…어릴 때 한일전 지면 맞아"
'금쪽상담소' '기생자식' 김형준 "태사자 해체 후 무기력증…어릴 때 한일전 지면 맞아"
  • 승인 2022.11.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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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방송캡처
사진=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방송캡처

오은영 박사가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 받는 태사자 출신 김형준에게 뼈때리는 일침을 가했다. 

4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는 김형준과 그의 어머니가 오은영 박사를 찾아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김형준 어머니 김견지 씨는 "한 마디로 '철없는 아들'이다. 제가 보기에는 어렸을 때와 똑같다"며 "아버지가 아직 용돈을 주면서 도와주는 게 사실이다. 답답할 때도 많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이어 "형준이가 사는 집에 절대 안 간다. 보고 싶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가 걱정된다. 충분히 스스로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지 않았냐. 아들이 마음 먹고 시작해줬으면 좋겠다"며 46세 철부지 아들을 걱정했다.

김형준은 어머니 인터뷰 영상에 당황했다. 그는 "부모님과 대화가 적은 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줄 몰랐다"며 "최근에도 아버지에게 매달 80만 원씩 용돈을 받는다. 사실 그것만으로 살기는 힘들지 않냐. 그래서 카드 리볼빙을 쓰기도 한다. 연체 안 되려고 이자만 내면서 어떻게든 버틴다. 그게 쌓이고 쌓이니까 카드 빚이 5000만 원 가까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2000년대 초반 연예계 물도 좀 먹고 명품이나 그런 걸 좋아했다. 이후 연기자 준비를 했는데 계약금으로 1억 원 넘게 준다는 회사가 있었다. 당시 계약금이 곧 들어온다는 것만 믿고 카드를 계속 썼다. 그게 아직까지 안 들어왔다"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그는 "그때 카드값으로 한 달에 800만 원 정도 썼다. 정말 철이 없었다. 아버지가 다 갚아주셨다. 근데 저는 계약금 받을 거니까 잠깐 빌렸다고 생각하고 갚을 생각이었는데 그게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이제는 1억 원을 준다는 회사가 없다"고 착잡해했다.

김형준은 "제가 대학에 수석 입학해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부모님이 미리 입금해 주신 돈 213만6000원을 학교에서 다시 받게 됐다. ‘이걸 부모님께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친구들하고 탕진했다. 장학금은 1학년 1학기 때 받고 돈 쓰고 노느라 학사경고를 받았다. 장학금 자격이 박탈됐다"고 털어놨다.

오은영 박사는 "지금 모든 경제적인 관리를 아버지가 해주고 계신 셈이다. 46세 형준 씨한테 뼈때리는 말을 할 거다"며 "이처럼 40대 넘어서도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계속 받으면서 곁을 떠나지 못하고 기대는 이런 사람을 '기생충, 기생 자식'이라 얘기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최근에는 부모의 연금, 노후 자금까지 내 돈처럼 말아 먹고 산다고 해서 '빨대족'이라고도 부른다. 표현이 좀 그렇죠?"라고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박나래, 이윤지는 "90년대에 잘나가지 않았냐, 태사자로 돈 많이 벌었지 않냐"며 의아해했다. 김형준은 "그때 계약을 잘못한 것 같다. 1, 2집이 잘 됐는데 그때 계약서에 '앨범 10만 장 이상 팔리면 소정의 금액을 지급한다' 이 한 줄만 있었다"고 전해 충격을 안겼다.

이어 "1, 2집 활동 때 정산은 100원도 못 받았다. 2집이 끝나고 '불공정 계약에 더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한 뒤 부모님 집에 멤버들 모두가 피신했다. 매니저가 찾아왔고 그 후부터 정산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고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었으니까 아쉽긴 했다"라고 털어놨다.

오은영 박사는 "경제적 자립 시기를 놓치면 너무나 힘들다. 돈에 대한 개념은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는 김형준 어머니에게도 "아들이 아직까지 경제적 독립을 못했는데 왜 그렇게 마흔 넘은 아들에게 도움을 줬냐, 특별한 이유가 있냐"라고 물었다. 김형준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일본과 다르더라. (시집 와서) 한국에 온 뒤 이상적인 교육관을 펼칠 수 없었다"며 "태사자가 해체한 다음부터는 부모로서 아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저보다 남편이 잘 도왔다"고 말했다. 

그는 "완전히 혼냈어야 했던 거 아니냐"라는 정형돈의 말에는 "결혼 후 시부모님과 생활했다. 집에서 저는 세 번째였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 다음이 저였다. 제자리가 없었다"고 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오은영 박사는 '피터팬 증후군'의 새로운 해석을 전했다. 그는 "'피터팬 증후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형준 씨도 마찬가지지만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그런 분들은 '헌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내가 부모님만큼 자식에게 헌실할 수 있을까?’ 헌신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사회적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형준은 "태사자를 해체한 뒤 '뭘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물어볼 사람도 많지 않고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제일 잘할텐데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 중 하나였다. 배송 업무를 하기 전까지 4~5년은 아무것도 안 해서 힘든 시간이었다. 지인들이 일하러 가면 저는 밤 늦게까지 영화 보고 인터넷 하다가 자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몇 년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어린 시절에는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서 친구들이 놀린 것도 있다. 친구가 엄마의 말꼬리를 잡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엄마는 일본인이 아니라 재일교포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태사자 활동 때까지도 그랬다"며 "어린 시절 한일전 경기가 있으면 속으로 '한국이 이겨라'라고 기도했다. 일본이 이기면 나는 학교에 가서 맞았다"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고백했다.

김형준의 어머니도 "학교에서 모임이 있을 때 많은 사람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부모로서 요구사항을 말했는데 다른 학부모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 그때는 (한국에 대해) 정말 몰랐었다"고 차별의 상처를 전했다.

오은영 박사는 모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대화가 별로 없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토크 포비아인 것 같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이 많아지고 익숙해지면서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1명이 토크 포비아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편안하게 조금씩 일본어를 배우면 좋을 것 같다. 한국어처럼 유창하게 안 하더라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일본어를 시작으로 일본이라는 어머니의 나라에 대해 조금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형준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고 리마인드 여행을 권유했다.

[뉴스인사이드 강하루 기자 news@newsinside.kr]